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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인물] 천재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

히틀러 시절의 그가 사랑했던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1905~1981)이 있다. 

정치가이면서 건축가였다.


그는 젊었을 당시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1930년대 학생들의 권유로 베를린 

나치 집회에 참가 히틀러 연설의 강렬함을 느끼게 되고 31년 나치 당에 가입하게 된다.


처음엔 자동차 연합회 회장으로 당직을 시작해 카를 항케라는 책임자를 만나 그의 집 리모델링 보수를 해주면서 

입지를 넓혀가게 된다. 괴벨스라는 인물을 만나게 되고 괴벨스는 그에게 나치 당 당사의 리모델링을 

맡기게 된다.


나치당이 승리하여 히틀러가 수상이 되자 다시 그를 베를린으로 불러들이게 된다. 33년 5월 1일 노동절 행사를 맡게 되고 히틀러는 그를 매우 마음에 들어 한다. 당 집회의 예술 및 기술적 공연 책임자로 임명된다.


그의 공식 첫 임무는 체펠린 펠트 스타디움을 마무리하는 것. 뉘른베르크에 지어진 건물.

뉘른베르크 여행 시 나도 이곳을 방문했었다. 약 34만 명을 수용할 수 없는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의 스타디움이다.


건축물에 관심이 많던 히틀러와는 각별한 사이였다고 한다. 베를린의 함락이 임박하자 그는 히틀러를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총통 방공호에 도착해 오랜 시간 이야기했고, 히틀러는 자살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다음날 히틀러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방공호를 떠나 함부르크로 떠나고, 히틀러는 자살했으며 그의 유언장에는 

슈페어를 해임할 것을 명령했다고 한다.


히틀러 죽임 이후 히틀러 유언에 따라 칼 되니츠가 대통령이 되고 그는 플렌스 부르크 정부에 참여하게 된다.

미국은 슈페어에게 항공전 정보를 요구했고 그 역시 많은 자료를 제공하게 된다. 연합국은 각료들을 

모조리 체포 나치의 종말을 선포한다.


그는 전쟁 음모, 전쟁 개시, 전쟁범죄, 반인륜적 범죄라는 항목으로 20년형을 선고받는다. 


  


전쟁의 역사의 끝은 언제나 좋지 못하다. 위대한 건축가로 남을 수 있었음에도 비운한 생애에 태어나 

세계를 지배하려 했던 인물의 옆에 있었다는 것이 그에게 위안이 될 수 있을까?

독일은 멋지고 좋은 건축물이 많았지만 모두 폭격으로 아픔을 겪었다. 

그래서 마음이 아팠다. 그러면서 우리의 옛 과거가 보였다.


무엇을 바로잡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아는 것이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