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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독일도시] #1 통일을 열망했던 도시 라이프치히!

라이프치히 Leipzig


대표적인 키워드는 가장 큰 중앙역, 세계에서 2번째로 가장 오래된 독일에서는 

가장 오래된 카페 카페바움(Kaffeebaum : 카페나무)

바흐의 도시, 그리고 통일을 그 누구보다 열망하고 노래했던 도시라는 점이다. 


당시 작센주에 위치한 라이프치히의 지역 위치는 베를린 보다 살짝 아래에 위치한 것을 볼 수 있다.

인구는 약 50만 명 정도.


먼저 1915년 지어진 라이프치히 중앙역(Bahnhof)은 당시 유럽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고 한다. 

건물도 보존이 잘 되어 있어 웅장하다.



중앙역 양쪽에는 출입구 위로 12개의 동상이 전시되어있는데, 

이 동상들은 라이프치히를 대표하는 12개의 직업군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산업이 잘 발달된 도시인만큼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2차 세계 대전 전까지는 인쇄업의 중심지였고 

그 이후에도 연극, 예술, 미술이 발달되어 라이프치히 대학을 비롯해 예술 학교가 많은 곳 중 하나이다.


그리고 유럽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카페 카페바움이 위치해있다.




  


45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유명한 건축물로 라이프치히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다.

커피값은 건물 역사만큼 그렇게 저렴하지는 않다고 한다. 일반 커피 한 잔에 \9,000원 정도 


그리고 음악의 중요한 인물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를 꼽을 수 있다

(1685-1750) 독일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로 설명되는 바흐는



200년에 걸쳐 50명이 이상의 음악가를 배출된 음악계 가문의 인물이었다.  

중부 독일 튀링겐 지방에서 태어난 그는 

튀링겐에서 태어난 그는 막내이다.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 오르간을 배우고 큰형에게 작곡을 배웠다고 한다.

뤼네부르크의 고등학교에서 장학생으로 들어간 그는 작곡가 겸 오르가니스트인 선생님을 만나 

큰 영향을 받는다. 

그는 주로 교회에서 채용되어 오르가니스트로 활동을 하게 된다. 


바흐라는 용어가 "거리의 악사"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고 할 정도이니 대단한 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바이마르 궁정으로 들어간 그는 뛰어난 작곡 능력을 펼치게 되고 음악가가 바랄 수 있는 최고의 지위인 

쾨텐 궁정의 악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그의 나이 33살의 일이다. 


좋은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라이프치히로 무대를 옮기게 된다. 그곳에서도 많은 활동을 했으나

사람들과의 의견 충돌로 차츰 열의를 잃게 되고 1949년 뇌일혈로 졸도 시력까지 잃게 된 

그는 1750년 7월 28일 사망한다.


바로크 시대의 음악가는 단연 바흐라고 할 정도로 많은 기독교적 음악을 남겼다.


그래서 음악이 많이 발달한 도시가 되었고

마크르트 광장에서는 클래식 공연, 페스티벌 행사도 많고 이것을 음료나 밥을 먹으면서 

볼 수 있다고 하니 언젠가 한번 꼭 가보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시 동/서독의 이야기를 할 시간이다.


라이프치히는 1980년대부터 불평등을 비판하고 통일을 염원했던 가장 뜨거웠던 도시이다.

성 니콜라이 교회가 그중 하나인데, 1980년대부터 시작된 월요 기도회는 민족의 자유와 통일을 위해 

기도회를 하였다고 한다. 그런 기도가 시위로 이어지면서 약 7만 명이 모이게 되었고 또 이런 것들이 확산되어 

전국적으로 시위를 하게 되었다고 하니,


작년 우리가 보여주었던 광화문 집회가 떠올랐다. 목적은 다를 수 있지만 국민들의 염원은 같았다고 생각하니 

신기하였다.

그 누구보다 독일을 사랑하고 지켜내려고 했던 도시 라이프치히. 관광지라는 지역의 특색을 떠나 

그들의 가진 고유한 멋은 꼭 만나보고 싶은 ~ 소원이 되지 않을까 한다.


ps. 다음편의 도시예고 : 에센^^으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