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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민주화운동] 광주 5.18 민주화운동 이제는 바로 알아야 한다.

다소 무거운 주제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시간으로는 오늘 개봉하는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기 전에 공부를 하기 위해 5.18 민주화 운동의 

영상과 글들을 찾아보았다. 결론은 분노가 치밀었다.


한강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 와 내용들을 보면서 우리는 왜 중요한 역사를 바로 알지 못하고 있었는가 였다.


그래서 내용을 찾아보았고 관련 유투브 영상도 첨부하였다.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광주시민과 전라도 시민이 중심이 되어 

전두환이 장악한 신군부 세력의 퇴진과 계엄령 철폐를 요구하기 위해 전개한 민주화 운동이 바로 

'광주 5.18. 민주화 운동' 이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1979년 : 박정희 사망, 같은 해 전두환을 중심으로 신군부가 12.12 군사 반란을 일으켜서 국가를 장악

1980년 : 5월 17일 계엄 포고령 10호 발령(정치활동 금지령,휴교령, 언론 보도검열 강화조치등이 포함된 

내용임)


5월초부터 사전에 광주로 배치된 군인들을 중심으로 

5월 18일 대학생뿐만 아니라 무고한 시민까지 살상.폭행하는 것을 

목격한 광주시민들의 두려움이 분노가 되면서 시위에 참여 


10일에 걸친 광주 민주화 운동 결과 

사망자 166명, 행방불명 54명,후유증 사망 376명, 부상자 3,139명 등 입에 담기 어려운 

그것도 같은 국민으로써 해서는 안되는 일들로 인명피해가 발생한다.


이때의 군인들은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참혹하고 더러운 일들을 일삼았다. 

이들이 아직까지 살아있다면 그들은 당당히 이 사회에 살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14세 이하부터 60대 직업에 구분 없이 무차별 폭행을 저질렀다.


또한 붙잡힌 사람들은 트럭에 실려 광주교도소, 상무대라고 불리는 곳으로 연행되어 온갖 고문을 당하였고,

차마 글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더럽고 잔인한 방법이기에 뺀 점 양해 바랍니다.


이들은 고문의 강도를 스스로 느끼도록 아주 다양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고문한 뒤 

거짓된 정보를 진술하도록 유도했다고 한다. 본인들이 "빨XX" 집단이라는 말도 안 되는 내용들을 말이다.


판결 내용으로는

전두환은 무기징역에 추징금 2,205억 원, 노태우는 징역 17년에 추징금 2,628억 원을 선고받았다. 

이후 김대중 정권에 의해 징역형은 사면됐으나, 추징금은 현재까지 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이런 정보를 알지 못한 것은 라디오, 방송 등 어떤 매체에서도 이런 내용을 보도할 수 없도록 

신군부가 모든 매체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광주의 전화까지 끊어버려 어떠한 수단으로도 알릴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 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1980년 5월 20일 전남매일신문 기자 일동 전남매일신문 사장 귀하


— 《진실, 광장에서다: 민주화운동 30년의역정》김정남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처음으로 알린 인물이 있다. 바로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씨이다.



독일 1공영방송 ARD 의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민주화 운동의 참상을 세계에 처음 알린것이다.


위르겐 힌츠페터 : 언론통제로 대한민국 내에서 보도할 수 없었던 내용을 알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

촬영한 필름을 큰 금속캔 속에 포장 과자 더미에 숨겨 일본으로 반출 후  독일 함부르크 뉴스센터로 전달 

그 소식을 세상에 알리게 된 것이다. 물론 이 역할에는 김사복이라고 불리는 택시운전사가 있다.


그래서 실제 영화에도 김사복 운전기사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이전에도 베트남 전쟁을 취재하던 중 1969년 봄 사이공에서 부상을 당하였던 경험이 있고, 

1973 - 1789년까지일본에서 17년간 특파원으로 근무하였다. 그런 그가 소식을 듣고 한국으로 와서

광주로 향하게 되고  촬영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결국 그는 2016.1.25. 7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이후 그의 소원대로 

'16.5.16.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묘지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그는 치밀어 오르는 울음을 간신히 참으면서 이 비참한 광경을 필름에 담았다. 


<인터뷰 내용 중에서>

"내 생애에서 한 번도 이런 비슷한 상황을 목격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베트남전쟁에서 종군기자로 활동할 때도 이렇듯 비참한 광경은 본 적이 없었다." 

라고 술회하였다


또한 광주 민주화 운동은 

2011년 5월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에 등재되는데 운동 관련 기록물이 등재되었다는 점에서  

굉장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우리가 박근혜 정부 사태에 나왔었던 변호사의 이름이 거론된다. 

바로 서석구와 지만원이라는 인물이다. 이들이 누군지는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잘못된 정보를 주장하는 

부분에서는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다. 


  

 
5·18 민주화 운동 기록물의 유네스코 기록 유산 등재가 최종 심사 결과만을 남겨 두고 서석구, 지만원 등 극우 인사는 5·18이 북한군의 학살이라고 주장하면서 유네스코 본부에 반대 청원서를 제출했다. 유네스코는 국내외 검증 절차를 거쳐 '북한군 개입설'이나 '폭동설' 등은 허위라고 결론짓고 2011년 5월 25일 심사위원 14명의 만장일치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내용을 정리하며 그리고 쓰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평화 그 자체였고 그 어떤 

민간 피해도 없이 끝이 났던 운동이다. 오로지 국가의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되었던 광주 시민분들에게 

다시 한번 애도를 표한다. 마지막으로 유튜브를 통해 아직 이 민주화 운동에 대해 인식이 없었던 나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다시금 역사를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